각권별

느헤미야의 족보

출처 5권 재판 1쇄 110-114page

성전과 성벽이 재건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서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격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인구(人口)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함을 느꼈다. 그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이미 과거에 작성된 제 1차 귀환자 명단을 재확인하였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보계"(느 7:5)이다. 이때가 주전 444년 제 3차 귀환이 이루어져 성벽이 재건된 후로, 제 1차 귀환 후 대략 93년이 지난 때였다.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한" 상태에서(느 7:4) 느헤미야는 먼저 족보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 각 사람에게 족보는 이스라엘에 속하였다는 국적의 표시가 되었으므로 매우 중요했고 이 족보가 확실치 않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제외되었다. 실제로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제사장의 족보에서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하여 부정하게 여겨져 제사장직을 행하지 못하게 되었던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을 기록하였는데(느 7:63-65, 스 2:61-63) 혈통이 의심스러웠던 제사장들이 자기가 속한 족보를 찾다가 끝내는 이를 밝히지 못해 제사장직을 박탈당한 것이었다. 다른 피가 섞인 이방 사람들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중에서 몰수히 분리한 것도(느 13:3) 동일한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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