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 문명의 거대한 기념물로 기록될 저서
이제 박윤식 목사님의 저서 구속사 시리즈 제 5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속에 담긴 영원한 언약의 약속」을 손에 들고 눈을 들어 보니 우리의 여름 강산이 푸른 하늘 아래, 청송으로 수 놓은 듯 화려강산입니다.
금세기 세계 학계에 내린 천혜의 축복
우리는 그분의 첫 저작이 나왔을 때에 그 간행을 놀라움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수만의 인파로 축하하고, 새로운 역사의 아침을 맞는 듯한 감격으로 다들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시리즈 다섯 권째를 들고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감격보다는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그 다음 12권 째까지의 완간(完刊)을 기도하면서 반드시 그 시리즈가 기독교 세계 문명의 거대한 모뉴멘트(monument)로 기념되도록 기망(冀望)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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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력이 대개 이렇습니다. 그분의 저서에는 깊이와 넓이가 함께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확인하는 정밀 시스템이 냉정하게 일관되고 있습니다. 우리 박윤식 목사님의 파고드는 깊이는 지층을 몇 개 관통해 가는 깊이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금광 그 맥을 찾았습니다. 샘물은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고 신선한 것처럼, 성서의 깊은 곬을 더듬어 파고들 때 성서의 감추어진 보석의 계시는 사도들과 교부들의 고전(古典)에서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성서의 문구 하나와 그 문법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신앙으로 둟고 들어가는 정공법입니다. 이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누락되었던 대(代)를 찾아낸 비결이 이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누적된 지혜로도 찾지 못하였던 비장의 보화를 세계 최초로 채굴한 것입니다. 그 누락된 대(代)는 누락되고 없어진 시간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보다 뜻 깊고 신비로운 시간대였음이 해명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조(對照) 연구로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약속들이 성취되는 구속사의 축소판이요, 구속 성취의 절정이란 사실을 최후로 입증할 수가 있었습니다. 누락된 공간의 의미를 확인한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 박윤식 목사님은 넓은 하늘의 일월성신을 전망하는 것처럼, 넓은 성서 세계의 망원 거리(距離)가 이번 저작에는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망망한 하늘에 무수하게 펼쳐져 있는 별들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사람과 지역과 이야기, 세계 열강들의 흥망성쇠, 그 수없는 성서의 거점들을, 일목요연하게 몇 갈래의 실타래로 연결하는 그 절묘한 손-재주는, 비범하다는 정도를 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투시력이 칼날처럼 예리하고서야 가능한 것이요, 그만큼 지구력도 소모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시면서 옷깃 하나 흩어트리지 않고 단정하게 보낸 시간과 인내력은 범인의 한계를 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처럼 성서의 미언(微言)과 그 대의(大義)를 관천(貫穿)하여 그 진수를 밝힘에, 학자로서 냉정하고 엄격하지만, 그 의미를 치용(致用)함에는 경세가(經世家)의 기품마저 풍기고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 구상력의 결정이 이번 시리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제 3기와 세계사의 변천'이라는 도표입니다. 우리는 이 도표를 펼쳐 들고는,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놀랍다는 말조차 그 경탄의 강도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도표는 최신형 프로그램으로도 짜내기 힘든, 순수한 수작업의 막중한 난공사의 산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전후한 성서의 역사 전체가 4대 계보를 따라 빠짐없이 총괄된 천문학적 난공사입니다. 도표 배치 구도의 파상구도(波狀構圖)의 기품마저 풍기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가 기껏해야 3차원인데 이것은 실로 5차원에 이르는, 입체적 사고 능력의 결실입니다. 버금하라면 천체(天體) 압축의 작업일 뿐일 것입니다. 그것을 세계 최초로 해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 분이 지금 한국, 이 자리에 계십니다. 저기 계십니다.
이렇게 깊이와 넓이를 가진 연구는 그 극에 이르렀을 때 만인의 가슴에 다리를 놓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남이라도 공감의 유대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주는 통로는 바로 이런 경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서에 있는 옛 일들이 벌써 핏줄되어 몸-가에 다가와 살에 닿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박윤식 목사님의 학자로서의 성실성은 견줄 데가 없습니다. 곳곳마다 그의 고투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 전인미답의 방대한 작업이 너무 힘겨워, 성경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며 원고지를 수없이 교정하며 밤을 지샌 일이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역사의 고금(古今)을 왕래한 발자국이, 잘 갔던 잘못 갔던, 안 가 본 곳 없이 널리 두루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성서의 어떤 문자나 사건이나, 그 획수, 위치, 대소의 크기, 무게, 상황, 메시지, 이런 것들 어느 하나도 그의 눈길을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성서의 문맥상 완전히 그 상관 관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때까지, 그 실험대 위에서 거듭 검증하노라 놓지를 아니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까닭에 우리는 성서의 점 하나, 지명 하나, 인명 하나, 글 하나의 의미나 그 전후 관계가 가지는 구속사의 경륜과 그 미스터리를 비로소 거시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본래 그렇게 읽고 이해되도록 쓰여진 것인데, 그런 방법론적 정론에 우리를 인도한 것이 바로 우리 박윤식 목사님이십니다. 연구 출발점 자체가 참신하기 때문에 대담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正道)였습니다.
이 '다른 것'이, 그분의 지금까지의 한국교회 안에서의 고초의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승리입니다. 개선입니다. 이제는 세계가 그의 글에서 심오한 진리의 구속사를 영감(靈感)과 논리(論理) 양편에서 다 새로운 충격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문체 역시 특이합니다. 서술법이 아니라, 대화법입니다. 우리들가 마주 앉아 담론하는 체온과 현장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친근입니다.
더욱 묘한 것은 어떤 문장이든 성서의 인용이 없는 글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친밀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저서들은 성서의 변압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쪽에서 들어가면 한 쪽에서 그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정미기(精米機)와도 같습니다.
거기다가 그 글들이 무게와 진실로 가슴을 후빕니다. 그것이 솟아난 것이요, 문향(文香)을 다듬은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 공감의 메카니즘이 있고, 숨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진실이 고맙습니다.
우리는 성서 4,000년의 실상을 진실 그대로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구속사 시리즈 5권을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 기독교가 그렇게 천지를 관철하고 역사를 관통하는 진리와 생명으로 넘치되, 조리(條理)가 투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힘 넘쳤습니다. 윤(潤)이 났습니다. 우리 박윤식 목사니의 그 피맺힌 연구와 기도와 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에서, 이런 대저들이 간행되어 소장(所藏0하게 된것을, 금세기 세계 학계, 그 천혜(天惠)의 축복으로 감사하고 경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 거대한 업적으로 몸에 둘린 섬광(閃光)이 눈부신, 우리들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윤식 목사님의 이 시리즈가, 성서의 깊이에 이르는 방법론적 표준이 된 것을 환호하면서, 구리빛 모습의 우리 박윤식 목사님! 그 체질 동철(銅鐵)같이 억세어, 두고두고 대사(大事) 이루시기를 기원하며, 우리 다 같이 우리 박윤식 목사님의 공로에 감사하면서, 우리도 함게 그 영광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소원인지라, 다 함께 마음으로부터 만강의 갈채와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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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백석대학교 석좌교수